개인적으로 뽑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10인 명단입니다. 일개 축구팬의 주관적인 선정이니 이 점 감안하시고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최대한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려고 노력했으며, 너무 오래 전 선수들의 경우 전문가들을 비롯한 축구계의 평가를 참조했습니다. 첫 A매치가 있었던 1948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선수들을 고려했습니다. 순위 선정 기준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최고점에서의 기량
2. 당대에서의 위상
3. 선수로서의 업적
4. 꾸준함과 일관성
5. 한국 축구사에서 갖는 상징성
10위. 최순호
이탈리아의 거함 유벤투스가 탐냈던 희대의 재능, 최순호를 10위에 선정했습니다. 사실 선수 본연의 기량만으로 따지자면 이것보다는 순위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눈부신 국가대표팀 커리어에 반해 클럽 커리어가 빈촐한 게 마이너스로 작용했습니다. 물론 최순호가 뛰던 당시에는 상황이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축구협회가 K리그 클럽들을 국가대표 선수 봉급 주는 들러리로 여기고 리그 일정을 씹어버린 채, 대표 선수들을 각종 친선 대회에 무자비하게 차출해가곤 했거든요.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눈여겨볼 만한 시즌이 1984 시즌 하나뿐인지라. 여러모로 1980년대 조악한 한국축구 행정의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클럽 경기도 못 뛰고, 해외 이적도 막히고. 그래도 국가대표팀에서의 꾸준한 활약으로 부족한 클럽 경력을 메꿀 수 있다고 봅니다.
9위. 허정무
알고 보면 더욱 더 대단한 선수, PSV 아인트호벤의 영웅, 한국의 굴리트 허정무를 9위에 선정했습니다. '고려대학교의 차범근, 연세대학교의 허정무'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그 당시 한국 축구계에서 갖는 위상이 어마어마했으며, 특유의 다재다능함과 멀티 포지셔닝 능력을 앞세워 1970~80년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중핵으로서 활약했습니다. 센터포워드, 레프트윙, 중앙 미드필더, 레프트백 등 공격에서 수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 가능했는데, 이 정도의 멀티 포지셔닝 능력을 갖춘 다른 한국 선수는 역대를 통틀어 봐도 김주성과 유상철뿐입니다.
이외에 허정무는 동시대의 다른 한국 선수들과 비교해서 특이한 이력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네덜란드 리그 진출입니다. 허정무는 네덜란드 빅3 중 하나인 PSV 아인트호벤에서 2시즌 가량 주전으로 뛰었는데, 이 때 네덜란드 에레디비시는 'UEFA 리그 랭킹'에서 3, 4위 찍던 시절입니다. 즉 오늘날로 대입하자면 세리에 A의 밀란이라던지, 분데스리가 강호 도르트문트에서 한국인 선수가 주전으로 뛴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간이 매우 짧았기에 8위의 선수보다는 순위를 낮춰서 놓는 걸로 했습니다.
8위. 기성용
8위는 다름아닌 2010년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허리라인을 책임졌던 기성용 선수입니다. 손흥민, 박지성과 더불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선수로 손꼽히며, 대략 6시즌간 EPL 클럽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스완지 시티 시절이 특기할 만 한데, 아직까지 손흥민조차도갖지 못한우승 트로피(리그컵 우승 1회)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구단 올해의 선수까지 수상한 이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해외 활약 이력을 높게 친다면 순위를 쭉 올려도 될 법한 선수가 아닐까 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본인이 에이스로서 활약하던 시기에 대한민국의 월드컵 성적이 영 별로였다는 점입니다. 2014, 2018년 2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 끝나고 보따리를 쌌었습니다. 2010 남아공 때는 신예였기에 에이스의 무게감은 박지성이나 박주영에게 있었고요. 그럼에도 201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였기에 이보다 순위를 내릴 수는 없다고 봅니다.
7위. 김주성
7위는 우리나라에서보단 해외에서 더 위상이 높은 듯한 김주성입니다. 김주성은 1998년 '마스터카드'가 주관한 20세기 아시아/오세아니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는 한편, 1999년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의 전문가들이 뽑은 세기의 아시아 선수 랭킹에서 차붐 다음 2위에 오른 이력이 있습니다.
국내의 전문가들이나 축구팬들 사이에선 월드컵 본선에서 기대 이하였기에 종종 허정무나 조광래보다 아래로 치기도 합니다만, 이들과는 달리 '대륙 최고의 선수' 타이틀을 수년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기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실제로 김주성은 1989, 1990, 1991년 3년 연속으로 '아시아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었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역대 최다 수상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다만, 분데스리가에서의 실패는 조금 뼈아픕니다. 물론 감독과의 불화가 있었다고는 해도 이 부분은 명백한 커리어의 오점입니다. 따라서 유럽에서의 활약만을 기준으로 랭킹을 산정하면 8위의 기성용보다 높은 점수를 주기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대 보정을 했고, 기성용과는 달리 한 대륙의 넘버원 선수였던 기간이 어느 정도 되는 편이라 김주성을 한 순위 더 위에 배치하는 걸로 했습니다.
6위. 최정민
사실 이 선수를 넣을지 말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유이한 메이저타이틀인 2차례 AFC 아시안컵 우승 당시의 선수가 10위권 안에 단 한 명도 없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대표격으로 넣게 되었습니다. 최정민은 우리나라 축구계의 체계가 제대로 잡히기 전의 선수인지라 평가가 어렵지만, '한국 축구사에서 갖는 상징성'을 고려해본다면 오히려 순위권에 없는 게 이상한 선수입니다.
AFC 아시안컵 2연패와 아시안게임 2연속 은메달의 주역, 일본과의 지역예선에서 3골을 작렬시키며 대한민국의 첫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 선수, 한일전 역대 한국측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 한국 대표팀 스트라이커 계보의 시작 등 '상징성'만을 놓고 본다면 가히 적수가 없는 수준입니다.
참고로 차범근, 이회택 등과 더불어 '한국 축구 명예의 전당' 초대 헌액이 유력했었다고 합니다. 다만 몇몇 원로들이 최정민 선수의 좋지 못했던 사생활을 트집잡아 헌액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20세기 한국 축구사의3대 선수 하면차범근, 이회택, 최정민을 뽑고 싶습니다.
5위. 이회택
5위는 '아시아의 표범' 이회택 선수입니다. 차범근, 김용식, 정몽준, 히딩크 등과 더불어 '한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최초 헌액된 7명의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국내축구 올드비들 사이에서는 한국 축구사 최고의 재능으로까지 평가되며, '차범근과 이회택 중 누가 더 낫냐'는 20세기 한국 축구팬들 사이에서 줄기차게 이야기되었던 떡밥입니다. 비록 21세기에 박지성과 손흥민이 등장하면서 이 떡밥은 잊혀졌지만, 이들이 등장하기 이전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를 다투던 선수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차범근과 이회택이었습니다.
힘, 스피드, 기술을 두루 갖춘 인사이드 공격수였던 이회택은 1960말~1970초 아시아 제일의 축구선수로서 아시안게임, 메르데카컵, 킹스컵 등 그 당시 아시아의 어지간한 메이저대회를 휩쓸었고, 역대급 팀으로 칭송받는 펠레의 산투스와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상대로 득점하기도 했습니다. 벤피카와 서독의 묀헨글라트바흐가 이회택에게 관심을 표명했다고 하는데, 기량이 탈아시아급이긴 했나 봅니다.
4위. 홍명보
4위에 선정한 선수는 '아시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입니다. 수비수뿐만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로서도 탑클래스였고, 그 탁월한 기량과 꾸준함을 앞세워 FIFA 월드컵 본선에 4차례 연속으로 참가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1994년 미국 대회에서는 세계적인 강호 스페인과 독일을 상대로 멋진 득점포를 올린 바 있으며, 주장 완장을 찼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우리 대표팀의 4강 신화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무려 브론즈볼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업적들을 감안한다면, 개인적으로 이 홍명보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고 싶습니다.
하지만 홍명보가 한국 대표팀을 넘어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유럽 리그에서 활약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홍명보를 탐했던 유럽 구단들은 꽤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스페인 명문 FC 바르셀로나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외 진출에 폐쇄적이었던 그 당시 한국축구의 정서상 이적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선수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유럽 빅클럽에서 활약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명보가 보여준 플레이스타일이 현대축구에 걸맞기도 하고, 홍명보의 기량 자체도 진퉁이었으니까요.
3위. 박지성
2000~2010년대 대한민국과 아시아의 자랑이었던 박지성 선수를 3위에 놓았습니다. 노력파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 축구사에서 손에 꼽는 천재 유형으로, 한 마디로 축구를 미친듯히 잘하는 선수였습니다. 태클이면 태클, 드리블이면 드리블, 패스면 패스 죄다 잘했고, 심지어는 이러한 능력들을 풀타임 내내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지구력까지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박지성을 두고 '두 개의 심장'이라고 하는데, 유럽에서의 별명은 한 술 더 떠서 'Three-lungs'(세 개의 폐)였습니다. 그만큼 무시무시한 스태미너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박지성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커리어적으로 봤을 때 가장 완벽한 선수입니다. 박지성은 세계 최강급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를 거뒀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는 2002 월드컵 4강 신화와 2010 월드컵 원정 첫 16강의 주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커리어'를 평가의 1번 기준으로 삼을 경우 박지성을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로 놓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박지성을 3위에 놓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팀 내에서의 위상 때문입니다. 뒤이어 나올 1위와 2위 선수와는 다르게, 박지성은 전성기를 보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핵심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로테이션 멤버에 가까운 선수였습니다. 비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당대 세계 최강급 클럽답게 주전 경쟁이 빡빡했다지만, 결국엔 서브였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요. 이에 따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일명 '리그 탑급 플레이어'로서의 위상 역시 누려본 적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팀 커리어는 제일 뛰어나나, 결국 선수 평가는 개인 대 개인이고, 개인 자체가 누린 위상 측면에서 뒤이어 나올 선수들보다 처진다는 이야기입니다.
2위. 손흥민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2위에 선정된 선수는 다름아닌 '손세이셔널' 손흥민입니다. 발롱도르 후보, EPL 이달의 선수 3회 수상, EPL 다섯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 토트넘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의 주역, 유럽 통산 150골 돌파 등등 한국 축구는 물론 아시아 축구 역사에 길이길이 기억될 만한 활약상을 남겼기 때문에 한창인 2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려 2위에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고점에서의 기량, 당대 위상, 누적 모두 어마어마한 손흥민.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은 있으니 바로 우승 커리어입니다. 개인의 활약은 뛰어났으나, 아직까지 소속클럽을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이끈 적은 없습니다. 2018/19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20/21 리그컵 준우승 등 연거푸 콩을 깠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 있어서 뒤이어 나올 1위 선수와는 차이를 두고 싶습니다. 1위에 나올 선수도 마찬가지로 고점에서의 기량, 당대 위상, 누적 모두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렇다면 부족한 팀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왜 박지성보다 위에 뒀느냐? 결국에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개인이 가지고 있었던 기량 및 위상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뛰어난 우승 커리어를 가지고 있으나, 결국에는 팀 내에서 로테이션 멤버에 그쳤습니다. 다만 손흥민은 잉글랜드 강호 토트넘에서 팀 내 최고 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졌으며, 프리미어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공격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조금 맞지 않는 비유일수도 있겠지만 로마의 '프란체스코 토티'보다 바르사의 '페드로'를 높게 보는 사람은 단연코 없을 것입니다. 요지는 우승 커리어가 다는 아니라는 겁니다.
1위. 차범근
이미 짐작하고 들어오신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대망의 1위는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독일 프로축구리그의 전설 '차붐' 차범근입니다. 쏜살같은 스피드, 강인한 허벅지에서 나오는 대포알 슛팅, 지능적인 위치선정 및 절륜한 마무리까지. 차범근은 1970~80년대 아시아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리그에서 통할 만큼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겸비한 천재 중의 천재였습니다. 프로축구리그조차도 없었던 그 당시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이 정도의 선수가 나왔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심지어는 이 선수, 군대 만기전역까지 했습니다.
차범근은 32개월 간의 군복무 때문에 26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유럽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늦깍이 유럽 데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통산 121골, 분데스리가 6시즌 두 자릿수 득점의 기염을 토했음은 물론 1977 발롱도르 수상자 '알란 시몬센'의 종전 기록을 깨고 분데스리가 역대 외국인 최다골 기록까지 수립했습니다. 참고로, 그 당시 분데스리가는 유럽 제일의 리그였습니다. 실제 'UEFA 리그 랭킹'에 따르면, 서독 분데스리가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무려 9년간 1위를 독차지했는데, 이 기간은 차범근의 전성기와 딱 맞물립니다. 한 마디로 유럽 제일의 리그에서 탑급 활약을 한 괴수였다는 것입니다.
이번 시즌 손흥민 선수의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팀(PFA 올해의 팀) 수상 여부를 놓고 많은 축구팬들이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개인 통산, 아시아 선수 통산 최초가 됩니다. 왜 갑자기 손흥민 이야기를 하냐고 물을 수 있을 텐데, 차범근은 이미 유럽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서 올해의 팀에 2번이나 선정된 이력이 있습니다. 바로 1979/80과 1985/86 시즌 독일 최대의 축구지 <키커>에서 선정하는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었습니다. 베스트 11을 놓고 겨룬 공격수들의 면면도 쟁쟁합니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케빈 키건', '클라우스 알로프스', '호어스트 흐루베쉬', '루디 푈러',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등등 분데스리가 역대급 선수들이 즐비했으며, 그 중 루메니게와 키건은 발롱도르 수상자입니다. 심지어 차범근은 끽해봤자 0.5~1시즌 정도이긴 했으나 루메니게와 키건에 앞선 평가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한편, 차범근을 손흥민보다 앞선 1위에 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메이저타이틀의 유무입니다. 손흥민은 소속클럽을 우승으로 이끈 적이 없지만,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을 UEFA컵 우승으로 이끈 적이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이 비교적 약한 팀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당시의 UEFA컵이 현재의 UEFA 유로파리그보다 훨씬 높은 위상의 대회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로 대단합니다.
게다가 차범근은 한국인 유럽진출 1호라는 상징성까지 갖고 있습니다. 한국 축구의 선구자, 더 나아가 아시아 축구의 선구자라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이 리스트의 1위 자리는 충분하다고 봅니다.